
설탕세를 둘러싼 논쟁에서 가장 흔히 등장하는 말은 늘 비슷하다.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한다”, “서민 부담만 키운다”, “자유를 침해하는 세금이다.”
이 주장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설탕세를 먼저 도입한 나라들 역시 거의 예외 없이 같은 반대 논리에 부딪혔다.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이 나라들은 어떻게 국민을 설득했는가라는 점이다.
멕시코는 설탕세 도입 당시 반대 여론이 가장 거셌던 나라 중 하나였다.
비만과 당뇨 문제가 심각했지만, “왜 가난한 사람들 음료에 세금을 붙이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멕시코 정부가 선택한 전략은 단순했다.
설탕세를 소비 문제로 설명하지 않고, 의료 재정 문제로 끌어올린 것이다.
정부는 음료 가격이 얼마나 오르는지에 집착하지 않았다.
대신 당뇨와 비만 치료에 쓰이는 국가 의료비 규모,
그리고 그 비용이 결국 모든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설명했다.
핵심 메시지는 분명했다.
지금 설탕 소비를 그대로 두면, 미래에는 더 큰 세금 인상 외에 선택지가 없다는 점이다.
논쟁의 초점은 ‘자유 대 세금’에서 ‘지금 조금 낼 것인가, 나중에 훨씬 더 낼 것인가’로 이동했다.
영국의 방식은 더 계산적이었다.
영국 정부는 설탕세를 발표하면서 국민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
대신 선택권을 기업에게 넘겼다.
“가격을 올려도 되고, 설탕을 줄여도 된다. 결정은 기업의 몫이다.”
이 메시지는 결정적이었다.
기업들은 가격 인상으로 소비자 반발을 감당하느니,
설탕 함량을 줄이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 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무가당·저당 제품은 빠르게 늘어났다.
설탕세는 존재했지만 체감 부담은 크지 않았고,
소비자의 선택지는 오히려 확대됐다.
가격 인상 여부가 명확히 기업 책임으로 남으면서,
정부는 “국민에게 세금을 물렸다”는 비판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다.
프랑스에서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은 인식 전환이었다.
프랑스는 설탕 소비를 개인의 자기관리 문제로 다루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이렇게 설명했다.
설탕을 많이 먹는 것은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그 결과로 발생하는 의료비와 보험 재정 악화는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조가 계속되면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되고,
결국 세금이나 보험료 인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설탕세는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 폭증을 막기 위한 재정 방어선이라는 논리였다.
멕시코, 영국, 프랑스의 접근 방식은 서로 달랐다.
그러나 공통점은 분명하다.
이 나라들은 국민을 훈계하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참으라고 말하지 않았고,
도덕이나 자기관리의 문제로 몰아가지도 않았다.
대신 돈의 흐름을 보여줬다.
설탕 소비로 누가 이익을 얻고,
그 비용은 결국 누구의 지갑에서 빠져나가는지를 분명히 했다.
국민들은 자신의 몸보다 자기 지갑의 미래에 훨씬 민감했다.
설득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히 겨냥했다.
해외 사례가 보여주는 결론은 단순하다.
설탕세는 소비자의 선택을 줄이기 위해 설계된 정책이 아니다.
선택을 줄인 것은 오히려 값싼 설탕만 가득한 시장 구조였다.
설탕세는 그 구조에 가격 신호를 보내 기업의 행동을 바꾸고,
소비자의 선택지를 다시 넓히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논리가 한국 사회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가.
다음 글에서는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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